창세기 26장 1,2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랄에 거주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랄에는 아브라함과 친목의 약속을 한 아비멜렉이 있는 곳이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장소에 있고 똑같이 아내를 누이라고 말한다. 만약 애굽으로 갔다면 문제 없이 지냈을 것 같다. 블레셋이랑 같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고 이삭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창세기 26장 8,9절
"이삭이 거기 오래 거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정녕 네 아내여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를 인하여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아브라함의 일을 알고 있는 아비멜렉이 이삭도 똑같이 하나님으로 인해 무서움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아비멜렉과 같은 두려움의 대상이 있다고 하자. 내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 아래에 아비멜렉이 있다고 생각하면 담대한 마음을 가지겠지만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아비멜렉을 생각하면 두려울것이다. 내 문제는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 만큼 작아지게 되어있다.
창세기 26장 16,17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이삭이 아비멜렉이 떠나라고 하자 그랄 골짜기로 갔다. 성경을 읽는 나는 하나님께서 그랄에 있어라고 말한지 얼마되지 않아 보인다. 8절에 '오래 거하였더니', 12절에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그 해에에서 그가 가리키는 것은 8절에 오래 거하였다고 말한 그 시점으로부터다. 그랄에 거하여라고 들은지 적어도 몇년은 흘렀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직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랄지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이삭의 모습을 본 받아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하는 것이 너무 습관으로 박혀버렸다. 야곱과 에서의 일로 이삭과 리브가가 가장먼저 하나님께 여쭤본 것 같이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창세기 26장 28,29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여기서는 이렇게 맹세를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블레셋)은 사이가 좋지 않고 사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학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랄 골짜기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았을까?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뭔가 달라 보이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