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장 6~9절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종들(선지자들)을 보내도 보내도 안되니깐 마지막으로 아들(예수님)을 마지막으로 보내신다. 하지만 농부들은 더 사악한 생각 즉 아들을 죽이면 이 포도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이고 만다. 이 농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진멸뿐이다.
예수님께서 만든 지구(포도원)에서 내가 욕심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천국은 성경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거라 와닿지 않고 지금 내가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들이 있기에 포도(전도)를 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획하고 노력하여 이룰려한다.
이제는 알았으니 포도에 관심을 가지자
만약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박지 않고 공경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마가복음 12장 30,31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가장 큰 계명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에 부가 설명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하신다.
마음(heart)을 다한다는 것은 계속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 같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오늘 수요예배에 참석해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목숨(soul)을 다한다는 것은 한글로 보면 순교자가 연상되지만 영어를 보면 영혼이다. 육체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지만 영혼은 하나님과 교제한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혼이 죽어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혼이 살아나는 것 같이 하나님과의 올바르고 지속적인 교제를 뜻하는 것 같다.
뜻(mind)을 다한다는 것은 내 목적과 목표 설정을 말하는 것 같다. 마태복음 6장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내 목적과 목표를 보았을 때 그 결과물을 알 수 있고 누구를 위한 목표인지를 알 수 있다.
힘(strength)을 다한다는 것은 "지속한다, 꾸준이 매일 노력한다."라는 뜻 같다. 작심삼일, 용두사미 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하나님도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데 우리도 노력해야 한다. 지속한다는 것은 쉽지않기에 힘(노력)을 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되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쉽게 이해된다. 남의 일이 아닌 내일 처럼 생각하며 도와주고 하면 된다.
마가복음 12장 38~44절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긴 옷을 입는자, 시장에서 문안 받는 자,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 그리고 과부가 나온다. 방금 가장 큰 계명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예가 나오는 듯 하다. 과부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여 자기를 나타내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높아지길 원하니깐 삶의 목적과 노력하는 것들이 지위와 재물이다.
과부는 왜 생활비 전부를 넣으면서까지 헌금을 드렸을까? 과부의 희망이라 하면 자식밖에 없을 것 같은데 뭐... 어떤 기도제목이 있었 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