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건의 시간

룻기 4장 Q.T


룻기 4장 1,2절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있었던 것은 기다렸다는 것이다. 성문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성문'이니 반드시 여기를 지나갈 수 밖에 없었던 통로였던 것 같다. 보아스는 차근차근 룻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보게 된다. 룻을 통해 낳은 자식은 자신의 자식이 아니다. 물론 자기의 자식은 맞미만 자기의 이름을 줄수는 없다. 과정을 준비하는 것을 볼 때 급하다고 막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규칙을 이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혼자 산다면 아무런 규칙이 필요없겠지만 단체,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줄 안다.


룻기 4장 12절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순간 욕인줄 알았다. 어떻게 며느리를 통해 자식을 낳은 일을 거론할 수 있을까?? 그것도 유다지파에서 말이다? 사람의 판단이나 관점이 아닌 약속을 이어받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시작은 보기에 좋지 않으나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보는 관점에서 본다면 축복의 말인 것 같다.


룻기 4장 17절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다. 그것도 모압여인이다. 만약 사람이 이 성경책을 마음대로 기록했다면 아마 이런 부끄러운 것은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애굽을 보더라도 요셉의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무런 희망도 없어 바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섬기며 또 하나님 품 안에 오고 싶어한 이 룻의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고 이런 룻을 통해 또 보아스를 통해 예수님의 족보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룻과 보아스의 살았을 때에도 축복을 했지만 죽고나서도 그 족보를 통해 그 복을 이어나가시는 것도 볼 수 있다. 내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이 믿음이 통로가 되어 내게 역사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