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1~3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의 간절함을 표현하였는데 너무너무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치지 않는 고통"이라는게 항상 생각하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이 곁에 있는데 내가 대충대충 생각하고 지내다보면 그 사람도 대충대충 성장한다.
로마서 9장 7,8절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내가 만약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이 말씀을 들었다면 어떤 심정일까? 내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에 화를 냈을 수도 있고, 큰 일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누가복음 19장 8,9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도 회개를 하기 전까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었지만 회개를 통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증명해주셨다.
로마서 9장 20,21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내가 나중에 어떤식으로 크게 쓰임을 받을까? 간혹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나를 판단했을 때 그렇게 크게 쓰임 받을 만한 면은 없는 것 같다. 그냥 평범하고 일반적인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것 정도일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또 큰 계획을 기대하고 있다. 야곱처럼 약속을 사모하자, 그러면 큰 계획이 실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