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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시간

창세기 48장 Q.T


창세기 48장 1절

"이 일 후에 혹이 요셉에게 고하기를 네 부친이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왜 다른 사람에게 들어야 했을까? 요셉이 많이 바빠서일까? 47장에서 야곱이 자기 죽음이 가까웠는 것을 알고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달라 요셉에게 부탁했을 때 요셉의 감정과 관련된 말은 없었다. 인생의 말년이라는 것은 누구나 한번만 겪게 되는 일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년에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아브라함의 노년에는 범사에 복을 주셔서 아들을 대신해 보살핌의 손길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야곱의 노년에는 그런말이 없다. 아들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창세기 48장 8절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17년 동안 애굽에 거하면서 요셉의 아들들을 보지 못했다. 이는 므낫세의 영향이 컷던 것 같다. 제사장의 딸이기 때문에 그 문화를 이어 받기를 원했을 것이란 글을 보았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입장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르치는 것이 다르니 많이 혼동 되었을 것이다. 므낫세가 장자이기에 아스낫이 더 신경을 썼을 것이고 그래서 야곱이 축복할 때(물론 하나님이 성령으로 임하셨으리라) 에브라임을 더 축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창세기 48장 11절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

범사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실망감도 큰 법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러한 저러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도 복을 받아 번창할 것이다. 등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면 언젠가는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도망 갈 때에 다윗은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 생각에 항상 초점이 양칠 때에 잇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최고점에 초점이 가 있는게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에 있었기 때문에 실망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창세기 48장 21,22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죽기 전에 하는 말에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즉 야곱이 하는 말을 보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기 때문에 너희는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란 말이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라는 말은 야곱이 하는 말이긴 하지만 성령에 감동되어 하는 말이다. 나중에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게에 더 많은 땅을 주겠다는 말인 것이다. 나도 이런 축복의 말씀을 듣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