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6장 2절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저주를 생각하다보면 여러 사건들이 생각난다. 노아가 포도주 사건으로 저주한 일, 예수님의 무화가 저주, 엘리사의 저주로 곰에게 찢긴 일. 사실 저주의 말은 엄청나게 쏟아질 것이지만 그 저주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저주는 아마 성경에 기록된 것이 저부일 것이라 생각된다. 뭐 신약시대에 더 생겼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까닭없는 저주는 그럼 어디로 갈까? 아마 다시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축복의 말도 상대방이 받을만 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니깐 말이다.
잠언 26장 4,5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와 같을까 하노라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그에게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어리석은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지 말고 어리석은 질문에 어리석게 대답하라는 내용인 것 같다. 예수님께서 힐문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하셨다.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같이 생기는 구절이다. 어리석은 질문을 받게 되면 기분도 나빠서 반박하고 싶어지는것은 당연한 것 같다. 나는 더 심하고 말이다. 내 입에서 찬양의 소리가 나오는 통로라는 생각을 가지고 악한 말이 나올 것 같으면 대답을 하지 않는 버릇을 들이도록 해야겠다.
잠언 26장 12절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아이들이 프로그래밍 하는 모습을 볼 때 실력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솔직히 다 거기서 거기다. 앞으로 가야할 걸을 수는 1만 걸음인데 9걸음이나 10걸음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사람들의 지혜는 도토리 키재기 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내 지혜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기에 늘 하나님께서 지혜 주시길 바라며 구해야겠다.
잠언 26장 18,19절
"횃불을 던지며 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이 있나니 자기 이웃을 속이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하는 자도 그러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