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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시간

민수기 19장 Q.T


민수기 19장 12절

"그는 제 삼 일과 제 칠 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 삼 일과 제 칠 일에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부정한 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제약이 생기는 상태가 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왜 '부정한 자'라는 제도를 만드셨을까?? 상당히 귀찮고 7일 동안이나 제약을 받는 동안 아무래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싶다. 사실 예배드리는 것도 비슷한 이치이지 않을까 싶다. 화요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토요모임, 주일 등 7일 중 5일의 모임이 있다. 다 그렇지만 놀고자할 때 놀 수 있는 시간대에 예배시간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속에 강건이 무척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민수기 19장 13절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시체는 왜 부정할까? 생각해봤다.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영이 죽어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해 영이 살아나야 한다. 시체는 이중에 무엇일까? 영과 혼이 없는 육신만 있는 상태이다. 이 육신이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욕망이 일어나게 만드는 녀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를 만지면 부정한 자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민수기 19장 22절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세삼스럽게 12해 혈루증 걸린 여자가 생각난다. 그 여자는 부정한 병에 걸렸기 때문에 부정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사람은 많은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갔다.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갔다. 이 믿음이 설령 자기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발판이었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믿음이라 표현해 주신다. 나에게 올무가 되기도 하고 슬픔이 되기도 하는 연약한 부분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도록 해야겠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작은 통로들이니 말이다. 고린도후서 12장 7~9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에게도 연약한 부분이 있었고 이로인해 하나님을 만나는 또다른 통로가 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