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장 1~3절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이 세 여자는 무덤 앞에 있는 돌을 굴릴 수 없으면서도 무덤에 갔다. 향품을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행동했다. 계산적인,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보다 예수님에게 향품을 발라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기 때문인 것 같다.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할려고 마음먹기 전에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일을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나님보시기에 선하고 좋으면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다.
마가복음 16장 14절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분명 예수님은 돌아가셨는데 자꾸 살아나셨다는 말이 들린다. “그럴 리가 있나?”, “어떻게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겠어”, “부활은 불가능한 일이지” 등 인간적은 생각으로 인해 기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 그러다 직접 예수님께서 눈앞에 나타나니 믿었다. 아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에 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경고나 방향을 제시하실 때 주위 사람이나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이 완악한 상태라면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 항상 내 상태를 살펴봐야겠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단순히 생각해봤을 때 17,18절의 내용은 나에게도 해당된다. 나도 믿는 자이니 이런 표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근대 나는 귀신은 본 적 없고, 방언 경험은 없고, 뱀은 못봤으니깐 뭐,,, 그리고 독,,은 먹어본 적이 없니 ^^;; 병든 사람에게 기도해 준적도 없다. 적고 보니 이런 표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흔한 경우가 아니니깐 말이다. 성경에는 이 다섯가지 표적이 다 기록되어 있다.
사도행전 8장 4~8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기서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표적이 있다.
사도행전 28장 24 ~ 26절
“바울이 한 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뱀과 독을 이기는 표적이 있다.
사도행전 2장 4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방언의 표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모든 사람에게 이런 표적이 나타난다면 이상할 것 같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