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7장 Q.T
창세기 37장 2~4절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같은 아들이지만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은 엄마가 여종이다. 그래서 그들끼리 통하는게 있었던 모양이다. 요셉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나이가 한참 어린 요셉을 왜이리 싫어할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잘못을 다 야곱에게 말한 사실만으로 싫었을 것이다.
창세기 37장 10,11절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요셉의 꿈으로 인해 아들들은 요셉을 시기하고 아버지께 꾸짖음을 당했다. 그리고 요셉의 말을 야곱은 마음에 두었다. 그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꿈이라고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 자기도 벧엘에서 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창세기 37장 13,17절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헤브론에서 세겜까지의 거리는 20~30Km, 세겜에서 도단까지의 거리는 100Km라고 한다. 1,2시간 걷다가 오면 되는 일이 아니라 이틀정도는 걸어야 하는 것이다. 도중에 목적지가 도단까지로 변경되었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단으로 목적지가 변경되었을 때 그냥 돌아왔을수도 있다. 물론 걸어간것이 아니라 동물을 타고 갔겠지만 100km면 그냥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거리이다. 비록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말한 성격, 꿈을 그대로 말한 성격을 보면 아직 어려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못헤아리는 것은 있었겠지만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는 것만큼은 다른 형들보다 더 잘했던 것 같다.
창세기 37장 24절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비가 오면 물을 저축하기 위해 만든 구덩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건기라는 뜻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설명 들었던 것이 생각나서 그냥 적어 봤다.
창세기 37장 26,27절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르우벤은 라헬이 죽고나서 빌하가 조금 자유로웠을 때 빌하와 동침했다.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사람들을 다 죽인 사람이다. 그래서 유다가 장자의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형제들도 유다의 말을 청종했지만 르우벤의 말은 청종하지 않았다. 빌하의 아들들도 있을 것인데 자기 어머니와 동침한 형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 37장 32절
"그 채색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요셉의 소식을 들은 야곱이 무척 슬퍼하고 있다. 라헬이 죽었을 때 보다 더 슬퍼하고 있다. 르우벤의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빌하와 동침한 후이고 빌하와 동침하기 바로 전에 라헬이 죽었으니 베냐민이 아직 아기 일 것이며 라헬은 없을 것이다. 요셉을 보며 라헬을 생각했을 것인데 그런 요셉이 죽었다. 노년에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보는게 그 재미일 것이다. 아버지의 슬퍼하는 모습이 남은 형제들에게 각인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