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의 시간

빌립보서 1장 Q.T

s뽈록이s 2013. 6. 20. 10:30


빌립보서 1장 3~5절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틋한 정이 느껴진다. 바울이 기뻐하는 이유도 순수하게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함으로 인해서이다. 내 기쁨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무엇을 기쁘게 여길까? 솔직히 생각해보면 세상것에 있다. 세상 것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


빌립보서 1장 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만약 착한 일을 시작한 것이 나뿐이라면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성령님이 계시기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빌립보서 1장 11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의의 열매가 가득하다. 정말 힘차게 성장한 나무가 연상된다. 나무가 열매를 가득 열리게 할려면 그만큼 큰 나무가 되어야 한다. 작은 상태에서 계속 열매 맺기에만 힘을 쓴다면 당장엔 좋을지 모르지만 열매의 총합을 보면 적을 것이다. 쓰임의 부르심을 입기 전까지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겠다.


빌립보서 1장 20,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사실 성경을 보면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때문에 부끄럽다고 안느끼는 줄 알았다. 지금도 막상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니면 창피하다. 이 당시에도 똑같았다고 생각된다.


빌립보서 1장 22,23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사실 육신이 죽어서 천국에 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아직 육신이 죽지 않았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울은 많은 일을 한 다음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며 열심히 산다. 나는 한 일도 없는데 그저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인내로 참고 배우는 것에 집중하도록 해야겠다.

빌립보서 1장 29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보통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하지만 고난도 있다. 요셉이 처음부터 성공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30살까지 상상도 가지 않는 고난을 맛봐야했다. 성경을 보면 모두 고난을 통해 성장을 했다. 나도 그 과정이라 생각하고 참아봐야겠다. 적어도 고난이 있다는 것은 힘들다는 것은 성장중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