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2장 Q.T
고린도후서 2장 3,4절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를 고린도사람들이 읽고 근심한 것 같다. 고린도 사람들의 상태가 좋은게 바울의 편지를 읽고 반응이 있다는 것이다. 관심이 없다면 그냥 무시해버리면 되는 것이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같이 있지 못하니 얼마나 신경이 쓰였겠나? 관심이 넘처 흘러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겠나? 바울 같은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고린도후서 2장 5~8절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은 것이 족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근심하게 만든 자가 있다면 용서하고 위로하고 사랑을 표현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미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벌을 받았으니 말이다. 내 마음이 여유로울 때에는 비록 큰 일이라 할지라도 가볍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난할 때는 작을 일이라도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내 마음이 가난할 때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난 즐거우면 즐거운 티가 나고 침울하면 침울한 티가 확실하게 표정으로 나타나고 이를 숨길 수 없는 그냥 속이 훤히 다 보이는 사람이다.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여우처럼 교활한 면도 생기는 것 같은데 나는 아닌 것 같다.
고린도후서 2장 12,13절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왜 디도를 만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바울의 우선 순위를 볼 수 있다. 복음의 문이 열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보다 디도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다. 단순히 디도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일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한 동역자이기 때문일까? 내 신앙생활의 목표도 바울과 같이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양육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겠다.
고린도후서 2장 14,17절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냄새, 향기의 특징은 무엇이까? 내가 맡고싶지 않다고 해서 안맡을 수는 없다. 근처에 있다면 무조건 맡게되어 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라는 표현과도 비슷하다. 빛이 나에게 비취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냄새와 같이 피할 수는 있다. 근대 이 향기를 풍기는 것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 한다. 고린도전서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암송도 한 구절이고 머리로는 잘 알지만 습관적으로 자꾸 내 힘으로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