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3절)가 제일 처음에 나온다. 어떤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일까? 예수님을 영접해 갓 새 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아직 옛 습관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지식은 빠르게 쌓이고 삶은 그것을 따라오지 못하기에 심령이 가난해 진다고 생각된다. 애통하는 자는(4절) 성경을 통해 배운대로 살려고 하나 많은 댓가 지불과 희생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참는 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속에 쌓인 것들을 하나님 앞에 토해내면 하나님께서 큰 위로를 주실 것이다. 온유한 자(5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6절), 긍휼히 여기는 자(7절), 마음이 청결한 자(8절)는 점점 성장해 나가면서 가져야 할 성품들인 것 같다. 화평케 하는 자(9절)은
고린도후서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원래 예수님께서 중보자로 오셨지만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같은 일을 한다. 불신자(하나님의 원수)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복음으로 전도를 해야 한다. 또 더 나아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나온다.(10절) 예수님을 믿기에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이 종종 있다. 복음을 전하다가도 욕을 먹을 수도 있고 도와주려 했으나 도움만 받고 훌쩍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받는 고난만큼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상급을 준비하고 계신다.(12절)
핵심은 16절 말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은 이것인 것 같다.
13절부터 48절까지의 말씀은 다 선행에 간한 이야기들이다. 우리가 왜 선행을 해야 하냐면 나의 선행을 통해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과 하나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재시하신 선행의 기준이 너무 높다. 형제에게 나쁜 말 한 것도 살인한 죄와 동일시되고 여자를 보고 야한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한 것이라 한다. 또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셨고 또 이렇게 하셨기에 하나님의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렇게 선행을 잘 하는 사람은 9절과 같이 화평케 하는 자라 칭함을 얻을 수 있겠다. 하나님은 불신자를 원수라 하시지만 화평케 하는 자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만들 수 있으니....
하나님이 제시하신 수준은 너무 높지만 아버지이시기에 가장 높은 수준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닐까..